하나님은 그 자녀가 세상에서 고통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며 지금이라도 당장 그분의 품으로 부르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이 땅에 두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는 잘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마치 배설물 통에 빠져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온몸에는 배설물이 묻어 있어 피부가 상해갑니다. 여기저기 손을 뻗치는 곳마다 만져지는 것은 온갖 더러운 것들뿐입니다. 고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격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했던 엘리야 선지자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셋째 하늘의 존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랑할 만한 자신의 모든 조건들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사단은 이런 험악한 세상을 보기 좋게 치장을 해서 살 만하다고 속삭입니다. 마치 이 땅에 모든 소망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여 중요하지 않고 죄스런 일에 매달리게 합니다. 우리의 바라야 할 본향은 분명히 하늘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볼수록 우리의 영원한 본향을 더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세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 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찬송가 508장 1절의 가사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지금이라도 죽어 낙원에서 주님 품에 안길 것이 확실하다면 여기에 더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도 우리가 이 땅에서 고통 가운데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부탁 때문일 것입니다. 천사도 흠모할 그 일을 우리가 감당해주길 원하셔서 우리에게 부탁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부탁이 우리 삶의 사명으로 삶에 표현되었을 때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대학 1학년 때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나의 일대일 양육 목자 선배가 세상은 ‘똥통’과도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너무 놀랐습니다. 살만한 세상 같은데, 그 분이 너무 염세적인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그 선배는 그 때 이미 하나님 나라의 깊은 것을 체험하였는지 거룩함의 잣대로 죄악된 세상의 실체를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사시는 선배의 모습은 저에게 아주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이렇게 좋은 목자님을 세워주셨던 주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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