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원리주의 이슬람교도 한 명이 서 있다고 해봅시다. 이 사람은 테러를 자행하고 많은 사람을 죽인 아주 악한 사람이며 우락부락하게 생긴 모습조차도 사람을 긴장하게 합니다. 그 앞에서 ‘당신도 나와 똑같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니 사랑하고 섬기겠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사람과 친해지다가 자신이 도리어 이슬람교로 개종하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상종하지 않고 모른 체하고 그냥 피해버리는 게 상책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내 앞에 나타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도 분명히 하나님이 지으시고 그분의 생기를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자녀가 맞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존귀하듯이 그도 존귀합니다. 다만, 그 권리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참 아버지를 모른 채 잃어버린 자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향해 ‘당신도 나 못지않게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미그리스도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가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한다면 그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여 년 전 같이 일하던 동료가 서울의 큰 교회에서 전도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전도할 대상을 추천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누구누구의 전도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그 친구의 전도에 대한 열심을 보면서 마음이 흐뭇했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훈련이 끝나고서는 그 열정이 지속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이 전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전도하는 삶으로의 입문으로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기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그 간절함으로 이웃을 바라보면 어찌 눈물을 안 흘리고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예수님은 지금도 잃어버린 영혼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그 영혼은 나만큼이나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너’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내 평생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남을 사랑한다, 섬긴다면서도 그 수준이 흉내에 내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미운 사람도 많고 보기 싫고 피하고 싶은 사람도 많은데, 어떻게 그들을 존귀한 존재로 여길지가 염려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주님 만날 그 날에 완성될 사랑의 진수를 맛본다면 얼마나 어설픈 일이었는지를 알게 되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도록 노력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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