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내 곁을 지나갑니다. 내가 수많은 군중 속에서 외톨이같이 홀로 떨어져 외로워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많은 사람 중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걸까?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참 놀라운 일이군!’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저만치에 예수님이 서 계셨습니다. ‘얘야! 너를 잃어버리고 나서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단다. 이제 안심하고 내 품에 안기거라. 나는 이미 너를 잘 알고 있단다.’ |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를 어려워합니다. 무슨 철학자나 되어야 대답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우스갯소리로 가볍게 대답하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정체성에 걸맞은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 것과 상관없이 스스로 귀한 자로 여기면 귀한 삶을 살 것이고 천하다고 여기면 천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귀한 자는 귀한 삶을 살고, 섬기는 자는 섬기는 삶을 삽니다. 가치 있는 사람은 가치 있는 삶을 특별한 사람은 특별한 삶을 사는데 스스로 천하다 여기면 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 잃어버린 우리의 본연의 모습을 잘 찾아서 그 신분의 존귀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다른 사람이 대답해 주기는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이 질문에 답하려 든다면 득도를 위해 수행하듯이 평생을 노력하여도 결론을 쉽게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는 길은 바로 우리를 지으신 분께 여쭙는 것입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우리를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신 분이시며 우리의 머리털의 개수를 세고 계신 분이야말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맏형으로 모시고 있는 대단한 귀족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4:6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9
이렇게 분명한 사실을 굳이 부인하면서 그 누려야 할 특권을 버릴 이유는 없습니다. ‘내가 존귀한 자’라는 이해가 있어야 ‘너도 존귀하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3:20
진료하다 보면 비난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충분한 설명을 하였음에도 치료의 결과가 안 좋을 때 환자들은 의사를 향해 불만을 토로하곤 합니다. 마치 자격이 없는 의사인 것처럼 몰아붙이기도 하고 나빠진 결과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 아무리 효과가 좋은 치료라도 하기가 싫어지고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것 같으면 먼저 몸을 사리며 치료에 소극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한 위기의 순간마다 극적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은 바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누구에게도 판단 받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김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 …’. 몇백 번을 되뇌어도 좋기만 한 나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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