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나 강의가 있을 때마다 모인 분들에게 꼭 내는 퀴즈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이 퀴즈를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길동이에게는 네 명의 친한 그리스도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철수 : 맛있는 먹을거리가 생기면 잊지 않고 길동이를 챙겼습니다.
영철 : 가끔 길동이를 만나 어려운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를 묻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곤 했습니다.
영희 : 길동이의 구원을 위해 잊지 않고 날마다 골방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순희 : 어느 날 가 길동이를 찾아가 예수님을 믿으라며 복음을 전했는데, 그는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께 질문하겠습니다.

“여기 네 명의 친구 가운데 누구 때문에 길동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요?”

여러분은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이 복음을 전한 순희나 골방에서 기도한 영희를 지목합니다. 생각이 좀 깊으신 분은 모두가 정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 때문에’라는 질문의 정답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구원 사역의 절대 주권자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그럼에도, 우리 교만한 인간들은 자신 때문에 몇 명 몇 명이 구원을 받았다고 숫자를 세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할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우리가 다양한 형태로 조금이나마 쓰임 받음으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였다는 사실을 영광으로 여겨야 합니다.

여기서 제시한 중보기도나 사랑의 섬김 등은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다 모여서 한 작품을 만들게 되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십니다. 한 친구 길동이를 살리시기 위해서 사랑의 하나님은 주변에 그 사람들을 두셨습니다.

또한, 그의 친구 각 개인은 한 사람 길동이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고 기도하고 전도할 대상을 내게 두신 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이며 은혜를 주실 기회입니다. 결국, 나를 유익하게 하시려고 내가 섬겨야 할 사람이 내 앞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두를 유익하게 하시는 한량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학창 시절 주일 오후에는 병원교회에 가서 봉사하였습니다. 예배는 병원의 로비에서 드렸기 때문에 몇 시간 전에 미리 가서 의자를 정돈하고 병실을 방문하여 환자분을 모시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오시거나 침대째 내려와서 예배드리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예배 후에는 원상태로 정리해놓은 후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병실을 방문하여 환우들에게 전도하곤 하였습니다. 한번은 찬양 한 곡을 하고 할머니 한 분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드렸는데, 전도지를 펴지도 않았음에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이제부터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시면서 기도를 해달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단지 다가가기만 했을 뿐인데 예수님을 영접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내 공로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적이 있었습니다. 봉사와 전도를 통해 다른 사람이 내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먼저 나에게 큰 유익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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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

누구에게나 일하는 직장이나 학교, 교회, 지역, 동문회, 친척 등 우리가 소속된 여러 종류의 공동체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기분 좋은 일입니다. 게다가 성품까지 좋아서 대인 관계가 원만하고 남의 어려운 일을 돕기를 늘 힘쓴다면 자신을 스스로 그 공동체 내에서 더 중요한 존재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만약 더 나아가서 ‘내가 없으면 이 공동체는 제대로 돌아가지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신념입니다. 모든 일의 중심에는 늘 하나님이 계시며 지금 이 순간도 그 일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느낄수록 본인이 없으면 그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큰 타격을 입을 것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자신이 굳이 그 각각의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 일을 하라고 거기에 두시기 전에 그 사람들과 일 가운데서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라고 베푸신 섭리 가운데 두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감사한 일 가운데 하나님을 찾습니다. 동료를 위해 중보를 하고 사랑으로 섬길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일을 그렇게 잘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그 공동체 가운데 두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온전해지고 하나님이 나를 유익하게 하시려고 계획하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 교회에 매주 꽃꽂이 봉사를 하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수년 동안 한주도 빠짐없이 헌신적으로 강단에 아름다운 꽃들을 장식한 이 집사님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한 주는 몸이 아파서 다른 분이 대신 꽃꽂이를 했답니다. 그 분은 유명한 꽃꽂이 학원 강사였었다고 합니다. 그다음 주에 나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빠졌던 그 주에 해놨던 꽃꽂이가 정말 대단했다고 성도들이 극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그 집사님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당장 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시작한 봉사가 오래가면서 이런 잘못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신 분일수록 더욱 겸손해지길 노력하고 열심히 일한 후에 무익한 종일뿐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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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내 평생에 몇 명을 전도했다고 떠벌리는 사람보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도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마치 자신이 해낸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말한다면 이미 상을 받아 버린 것이 되어 하늘에 남겨지는 상은 없어질 것입니다.

기독교 서점에 가면 ‘OOO 전도왕’이라는 책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는 분들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전도의 열매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주권은 분명히 주님께 있는 것인데 내가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의 수를 세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성도의 기도와 사랑의 섬김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이 아름다운 협력이 필요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4:2

항상 힘써야 할 복음 전도를 수로 표현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함정에 빠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숫자에 연연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수천 명이라도 주님께 돌아오게 하실 수 있는 분인데 몇 명을 전도하고 교회를 몇 개 세우고 몇 명을 도왔다는 이런 우리의 자랑이 얼마나 가소롭겠습니까? 다 주님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하면 될 것을 하나둘 숫자를 세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10여 년간 사역하고 나오신 한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사역 동안 단 한 명의 회심자만 얻었을 뿐이라고 고백하시던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 캄보디아에서는 대부흥이 일어나서 집회 때마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주님께 돌아온다고 합니다. 숫자의 논리라면 열매 맺고 인정받고 싶은 선교사는 캄보디아로 가야 합니다. 교회는 선교사에게 왜 열매가 없느냐고 다그치면서 교인 수를 보고하라고 하므로 그 힘든 곳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10년 사역한 선교사님은 능력이 없고 심지어는 불성실한 사역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필리핀의 한 사역자에게 한국 교회에서 교회를 지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넓고 좋은 교회에 교인이 많지 않은 것을 보고 교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예배드리는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교회를 지어줬는데 왜 교인이 안차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고민하다 못해 선교비 일부를 할애해 현지인들을 그 자리에 앉혀놓고 사진을 찍어 보내기 시작했고, 나중에 이 사실이 발각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님 일을 하면서 숫자를 과감히 버린다면 더 온전한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더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입니다. 숫자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주님이 하신 일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갓 전문의를 따고 한 종합병원에 취직해서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 수년 후에 선교지에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 훈련, 말씀 묵상 뭐든 다 열심히 했었습니다. 그곳이 선교지이고 여기서 선교하지 못하면 어디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진료 현장에서 환자에게 전도도 열심히 했었는데 그 수가 많아져서 엑셀 프로그램에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전도한 날짜와 영접 여부를 기록하여 월별 통계를 내기도 했습니다. 매달 이런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이 자랑할 만한 좋은 열매들을 흐뭇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생각이 얼마나 유치하고 교만했든가 하는 맘이 듭니다. 훗날 마치 내 공으로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던 나의 모습을 회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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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목마른 사람이 있습니다. 갈급해하는 이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은 갈증을 없앨 수 있도록 물을 갖다 주는 일일 것입니다. 가져다주는 것에 더해 지극한 정성으로 손수 컵을 기울여 먹여줍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 사람은 그 사람의 섬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이고 마찬가지로 사랑의 섬김을 받았다고 느낄 것입니다.

흘러넘치는 사랑은 이것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상대방이 갈증을 느끼기 이전에 먼저 자신이 목말라야 합니다. 그 갈증이 난 목을 축여주시도록 주님께 구하면 우리의 필요를 정확하게 알고 계신 사랑의 주님께서 분명히 그 소원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물을 달라고 구합니다. 우리의 간구에 합당하게 주님은 가득 그리고 차고 넘칠 만큼 내 잔을 채울 것입니다. 급기야는 그 물이 주변을 모두 촉촉이 적시는가 싶더니 이젠 강물처럼 불어 오릅니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충만한 흘러넘침으로 갈증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컵을 기울여 먹인 사람은 자신이 물을 먹였다고 생각하겠지만,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흘러넘치는 사랑을 구현한 사람은 주님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이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또한 내게 있는 것을 떼어 조금 나누어주기보다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차고 흘러넘치는 사랑으로 주변을 충만하게 적셔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흘러넘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하면 할수록 주님과 더 친밀해지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4:16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2:4

의예과 신입생 때 간호학과 선배가 밥을 사주겠다고 해서 병원 앞 식당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그 선배가 컵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고 꽉 찼음에도 멈추지 않고 식탁이 흥건하게 젖도록 부었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차고 넘치는 사랑에 대해 설명해주시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매이는 게 싫어서 기독학생 동아리에 들어갔어도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중이었는데, 선배들이 나에게 베풀어준 사랑은 평생 처음 겪어보는 것들이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의 방황은 내 닫힌 마음을 열어준 선배와 동기들의 사랑 때문에 쉽게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그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기독학생회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년간 교회를 다녔어도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었는데, 그 모임을 통해서 많은 신앙체험을 할 수 있었고 예배와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날 사랑하고 계심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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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일을 한다는 것을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해 드리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누구누구를 먹였고 누구누구를 위해 기도했고 누구누구를 위해 복음을 전했다고 말하며 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한 결과 이러이러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바로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관점은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그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면 내가 무엇을 해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먹이시고 하나님이 전하신 것입니다.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함에도 우리가 그 전부 혹은 일부를 가로챈다면 그것은 자녀의 도리가 아닙니다. 특히 열심을 내는 그리스도인일수록 더 이런 함정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이런 사역을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일을 잘 나타내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6:29

예수님을 찾아온 무리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대답하고 계십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심을 믿는 것이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생각뿐인 허상이 아니라 우리 삶에 실체로 드러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11:1

믿음은 사람의 생각에 좌우되는 주관적 실체가 아니라 객관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확신을 더하는 근거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그리스도인이 객관적 실체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은 종말론적 미래에 나타날 사건을 시사합니다. 이 미래지향적인 믿음은 미래를 내다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서서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열심이 하나님 나라의 상급으로 이어지려면 지나친 분주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정의되는 것을 기억하고 뭔가를 하려고 일을 만들기 이전에 잠잠히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만 바라보는 모습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62:1

내가 하는 한 집사님은 교회에서 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주일에는 아침 일찍 교회에 가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주일 낮 예배에서 성가대를 섭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주방 봉사를 하고 오후 예배를 드리고 뒷정리를 하고 나면 저녁이 다 되어서 집에 옵니다. 수요일의 수요예배와 거의 날마다 새벽기도를 나가고 금요일엔 철야 기도회를 갑니다. 목요일엔 구역 모임에서 구역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집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은 엄마 없이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지내다 보니, 그분의 믿지 않는 남편은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꾹 참고 산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오늘도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한 목사님은 새 교회에 부임하고 나서 제일 먼저 금요철야 예배를 없앴고 주일에도 부인들이 최대한 집에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가정에 더 충실하게 되어서 그런지 평생 교회 문턱을 밟지 않았던 많은 남편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가 하여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일을 열심히 한다 해도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고 받을 상급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허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완성되는 믿음의 실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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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앉아서 먹는 자와 섬기는 자 중 누가 크냐는 예수님의 질문은 너무 쉬워 보였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하인이 주인보다 더 크다는 주님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주셨습니다.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주인이나 손님이 집에 들어오면 먼지투성이가 된 발을 씻어주는 것은 그 집의 하인이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0:28

예수님의 섬김은 당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해 주시는 최고의 경지까지 이르렀습니다. 누군가를 섬긴다(serve)는 것은 내가 당신의 종(servent)이 되겠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여전히 높은 위치에 있기를 고수하면서 남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섬기는 자’의 원어인 디아코노스는 일반적으로 식탁이나 다른 천한 일에 시중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 자유로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자유로운 자이나 섬기는 일에는 종이 되라고 하십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갈5:13

잘 섬기기 위한 첫 번째 단추는 겸손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않고 ‘종’으로서 섬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내가 귀한만큼 상대방도 존귀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마치 종이 주인을 대하듯이 인격적으로 진심으로 대해야 합니다.

두 번째 중요한 점은 나를 위한 섬김이 아니라 남의 필요를 채우는 봉사이어야 합니다. 섬김과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빠질 수 있는 흔한 오류는 그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과대평가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만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섬김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의 절실한 필요를 알아 채우는 것입니다.

사람의 깊은 속을 알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사람들의 의견에 마음을 열고,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지혜를 훨씬 넘어서는 놀라운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진정한 사랑의 섬김을 가능케 하실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섬김은 상대방의 종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섬기는 것은 하여도 종이라는 것은 인정하기가 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섬긴다’는 것과 ‘하인(종)’은 같은 어원을 가진 낱말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했습니다. 이걸 보면서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남보다 위에 서있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겸손으로 치장하며 밝은 미소로 봉사하는 내면에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숨어 있기도 합니다.

Posted by 소겸

삶의 현장에서 독특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연구하고 훈련받고 체득되어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독특성을 지니게 되면 그 전문성에 힘이 실리게 됩니다. 이 힘의 균형을 잘 조절하여 그 집단이 하모니를 이루게 하는 것이 리더의 몫입니다. 힘이 막강해질수록 불협화음을 내게 되고 그 전문가가 없어짐으로 공동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의 한 종류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가며 지내는 것은 남을 위한 봉사나 배려이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복을 주시려고 성숙시키시려고 허락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같이 일하는 동료나 나를 찾아오는 고객들에게도 있지만, 그 이전에 먼저 나에게 있으신 것입니다. 같이 일하다 보면 동료가 내게 와서 누구누구와는 맘이 안 맞아서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어려운 상대를 붙여 놓으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요 은혜를 주시기 위한 수단입니다. 다시 경험하기 어려운 그런 좋은 상황을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도리어 즐길 줄 알아야 하고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한 중환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수소문해서 그 병을 잘 고친다는 의사에게 환자를 데려갔습니다. 경험이 많던 의사는 단번에 그 질환을 진단해내고 적절한 치료를 해서 그 환자는 고비를 넘기고 생명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셨더라면 아마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 의사가 그 환자의 생명을 건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이 환자가 이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살았을 수도 있고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 이 의사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입니다. 살아야 할 사람이라면 어떤 의사를 만났어도 살았을 것이고, 죽을 운명이었다면 명의를 만났어도 소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의사를 만났기 때문에 살았다고 100%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소중한 일을 하고서도 ‘나 때문에’라는 수식어를 과감히 버리고 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직업이나 재능은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 보면 역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역할은 절대적이지 않아서 내가 아니어도 일은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역할에 대해 논할 때 그것을 타인을 위해 자신이 꼭 필요한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내가 아니어도 세상은 돌아갑니다.

선교훈련을 다 마치고 선교지에 나가기 바로 직전에 돌이 갓 지난 셋째 아이가 선천성 백내장이라는 병을 진단받았습니다. 부랴부랴 수술을 받게 하고 일 년 동안 보지 못하여 약시가 되어버린 눈의 재활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가기로 했던 방글라데시의 지역 지도자는 우리에게 그곳에는 소아안과가 없으니 다 나은 다음에 선교지로 나오는 게 좋겠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국에 정착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고, 근무할 여러 병원을 알아보던 중에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다시 와줄 수 있겠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 일은 엄밀히 말하면 외과 전문의의 일은 아니었지만, 내게 주어진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해 나갔습니다. 동료들은 하나님이 내게 이 일을 감당케 하시려고 선교를 못 나가게 막으신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언젠가 다시 이 직장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이 일들을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면서, 떠나야 할 때임에도 못 떠나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내가 없어도 잘만 돌아갈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의 유익을 위해 이곳에 두셨다고 깨달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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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

외과 의사인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외과 의사가 되려고 14년을 투자했는데, 저는 이 기술을 어떻게 하든 주님의 사업에 써야겠습니다. 저에게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기술이 아닙니까?’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나의 가치는 외과 의사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의 전문분야를 어떻게 사용해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나의 존재 자체 때문에 주님께 기쁨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이 너무 좋아서 그분이 감당해 주길 원하시는 의료 선교사가 되었다면 문제가 없는데 의료 선교사가 되겠다는 결정을 먼저 내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면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삶의 목표가 환자를 몇 명 진료하고 수술을 몇 건을 하고 환자에게 전도를 몇 명에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내가 이 땅에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주님께 영광이 되고 기쁨을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데 꼭 외과 의사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그것도 기꺼이 포기할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루터는 성속의 이원론을 탈피하여 직업에 대한 일원론을 말했습니다. 즉 어떤 직업으로 부르셨던 간에 그 것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칼뱅도 정해진 직업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직업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가진 어떤 일이라도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신자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뭇잎이 많이 떨어지던 어느 가을날 길거리를 열심히 청소하는 청소부를 보았습니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말끔하게 치워 산뜻해진 도로를 보며 출근하는 나의 마음이 참 즐거워졌습니다.’

‘아침에 애들을 등교시키고 짬을 내어 옆집에 놀러 갔더니 집이 너무 깨끗했습니다. 우리 집은 아니지만 말끔하게 정돈된 가구들, 먼지하나 없는 깨끗한 거실 그리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부엌의 그릇들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후련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길거리의 청소부나 살림을 하는 주부를 가리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영광을 받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생각은 나와는 달라 모든 일을 기뻐 받으시고 그 일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길 원하십니다. 나는 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복음이 전해지게 하시고 성화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신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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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

하나님께서 어떤 사업을 구상하시고 그 일을 감당할 사람들을 채용하기 위해서 모집 공고를 내셨습니다. 여기저기서 영광스런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기준을 갖고 그들 중에서 하나님의 일에 적합한 인재를 뽑으실 것 같습니까?

같이 일할 직원을 뽑기 위해 몇 번 면접관 역할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그 일에는 제격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장점들을 짧은 시간 안에 면접관에게 쏟아냅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누굴 뽑아도 일을 잘할 것 같지만, 그래도 면접관은 누군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때 명확한 선택의 기준이 세워져 있지 않다면 참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7

하나님이 택하시는 사람은 지혜 있고 강한 자가 아니라 도리어 미련하고 약한 자입니다. 내가 미련하고 약함을 주님 앞에 인정해 드릴 때 비로소 택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가 말로는 그런 고백을 함에도 주신 지혜와 능력이 마치 자신의 것이라 여기고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곤 합니다. 그런 자세로 주를 섬긴다면 주님의 것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한 것이며 택함을 받는 사람의 부류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지혜와 능력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어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여기에 아무도 주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어떤 일을 성취시키는 것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더 큰 관심이 있으신 분입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순간부터 주님이 우릴 택하시고 일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인턴 선생과 회진을 도는데 환자 한 분에게 복음을 전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선생에게 그 환자에게 다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선생은 난감해했습니다. 전도해본 적도 없고 용기도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못하겠다는 사람을 택하셔서 쓰신다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고민하던 그 선생은 결국 내과의 한 선배에게 부탁해 같이 가서 그 환자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몇 년 후에 두 선생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따져보아도 도저히 못 할 것 같을 때마다 미련하고 약한 자를 택하신다는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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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맺는 곳은 나무 기둥이 아니라 가지입니다. 그 가지에는 잎이 달려있고 새싹이 나며 꽃이 피고 열매가 매달립니다. 이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는 일은 너무나 간단한 것입니다. 그냥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나무에 붙어 있지 않다면 결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푸른색도 없고 거칠거칠한 표면을 가진 나무는 마치 죽은 것과 같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가지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4~5

사람들의 관심은 열매를 맺는 가지의 화려함에 주목하지만, 우리의 눈은 나무로 향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가지이긴 하지만 포도나무라 할 수 있으나, 나무를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가지밖에 될 수 없습니다. 꺾인 가지를 포도나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가지는 곧 말라서 버리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는 요령이기도 하지만, 열매를 맺게 한 것이 내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 때문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나서, 세례도 받지 않았을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해가 여름에 교사들끼리 소풍을 가기로 했는데, 주일학교 부장님이 나에게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하는 설교는 서점에서 구매한 설교집을 참고해서 어떻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서 요한복음 15장 말씀을 갖고 열매 맺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고 ‘이 가지에서는 결코 열매가 맺힐 수 없다.’고 설명했는데 사람들이 다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자연 속에서 가지가 열매 맺기 위해 나무에 붙어 있어야하는 너무나 명쾌하고 간단한 진리가 너무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쉬워 보이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주님 도움 없이 자기 혼자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소겸
200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아미쉬(Amish) 마을에서 총기 난동 사건이 일어나 여학생 5명이 숨지고 범인은 자살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람은 그 마을에 우유 배달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인질극을 벌이는 와중에 아내에게 ’20년 전의 일을 복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언론에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의 범행 동기는 1997년 딸이 태어나자마자 죽었는데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 원망하고 있었고 그것을 표출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가장 분노케 할 수 있는 복수 방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순진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도 역시 교인이었지만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아닌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아미쉬 마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택하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사건 이후 아미쉬 공동체가 보여준 반응입니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그 살인자를 용서한다는 공개 담화문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 장로들은 도리어 범인의 가족들을 찾아가 위로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다니던 교회의 교인들도 참석하지 않은 그의 장례식에 아미쉬 공동체 식구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하여 조의를 표했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그들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은 자신들의 믿음에 합당한 원칙에 따르는 진실한 반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속적이기로 유명한 CNN을 포함한 각 언론사가 이 일을 미국과 세상에 알리면서 아미쉬 공동체의 믿음의 역사를 많은 사람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세상의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복음의 본질을 드러내는 진실한 삶을 살아낼 때 삶이 드러내는 복음의 능력은 세상 끝까지라도 증거되어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는 허울만 존재하고 삶에서 생명을 살리게 되는 복음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삶의 전 영역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됨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변해갈 때 이런 능력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의료 봉사를 위해 팀을 이끌고 두 번이나 티베트에 다녀왔습니다. 티베트를 장악하려는 중국은 정책적으로 많은 혜택을 주면서까지 한족 중국인들을 이주시키고 있고 티베트인들과 라마 불교에 대해서도 엄청난 핍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종교에 대한 신앙심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인 듯합니다. 수도인 라싸를 거닐다 보면 이마에 옹이가 박힌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오체투지’를 한 흔적입니다. 큰절의 형태로 양쪽 팔꿈치와 무릎 그리고 이마를 땅에 닿게 절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절을 했는지 이마에 굳은살이 박여 있습니다.

북한에 성경을 배달하시는 한 목사님의 집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어느 성도의 집에 갔었는데, 다락에 가보니 마룻바닥에 나란히 홈이 팬 곳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성도의 어머니가 수십 년을 남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몸에 예수를 믿는 흔적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지금 이 사회는 그리스도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인’을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라고 증명할 수 있는 흔적을 가졌다면 우리 삶을 통해 복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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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