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화과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던 삭개오는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바라본 삭개오의 모습은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으며 또한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여겨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잃어버린 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19:9~10
삭개오를 바라보던 시각
사람들 | 예수님 |
세리장 부자 작은 키 죄인 |
이름을 아심 아브라함의 자손 잃어버린 자 구원의 대상 |
예수님은 삭개오와 개인적인 관계를 갖기 전부터 이미 그를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세리장이었기 때문에 그당시 유대인들이 최고의 죄인으로 여기던 그를 향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잃어버린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껍데기에 불과한 부자 세리장을 중요시하지 않고 그의 본질을 보셨으며 그가 잃어버린 자이었음을 인식시킴으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치관을 우리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평가는 하나님의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선입관이나 자신이 경험한 그 사람에 대한 정보들이 그 사람을 정확히 대변해 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그 사람 마음 깊이를 다 헤아릴 수는 없으며 실제로는 그 당사자도 자신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중에는 잃어버린 자녀도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가 돌아온 탕자의 비유(눅15:11~32)에 나오는 둘째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소생이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결국 아버지 품에 돌아올 잠재적 그리스도인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바라볼 때 믿는 사람인지 안 믿는 사람인지 이렇게 두 부류로만 나누어 보는 시각을 버리고 그들의 삶을 연속성을 지닌 구원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을 안 믿고 있는 사람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자녀요 결국에는 구원에 이르게 될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괴롭히는 적군이 아니라, 사랑하고 섬기라고 우리 곁에 두신 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정도가 우리를 지으실 때를 100%라고 한다면, 죄로 인해 관계가 단절되고 멀어진 정도에 따라 몇 %씩 내려가 있는 상태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이 100%의 상태를 회복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곧 주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소망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죄인으로만 여겼던 삭개오를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로 보셨다는 사실은 나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삭개오의 혈통이 유대인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넘어서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그의 믿음을 진실한 것으로 여기시고 사랑으로 대하신 예수님의 행동은 온몸으로 전율을 느끼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볼 수 있게 나를 이해시킨 결정적인 계기를 갖게 해준 말씀이었습니다. 수없이 삭개오 이야기를 읽었지만, 이렇게 깨달아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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