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에서 독특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연구하고 훈련받고 체득되어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독특성을 지니게 되면 그 전문성에 힘이 실리게 됩니다. 이 힘의 균형을 잘 조절하여 그 집단이 하모니를 이루게 하는 것이 리더의 몫입니다. 힘이 막강해질수록 불협화음을 내게 되고 그 전문가가 없어짐으로 공동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의 한 종류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가며 지내는 것은 남을 위한 봉사나 배려이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복을 주시려고 성숙시키시려고 허락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같이 일하는 동료나 나를 찾아오는 고객들에게도 있지만, 그 이전에 먼저 나에게 있으신 것입니다. 같이 일하다 보면 동료가 내게 와서 누구누구와는 맘이 안 맞아서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어려운 상대를 붙여 놓으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요 은혜를 주시기 위한 수단입니다. 다시 경험하기 어려운 그런 좋은 상황을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도리어 즐길 줄 알아야 하고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한 중환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수소문해서 그 병을 잘 고친다는 의사에게 환자를 데려갔습니다. 경험이 많던 의사는 단번에 그 질환을 진단해내고 적절한 치료를 해서 그 환자는 고비를 넘기고 생명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셨더라면 아마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 의사가 그 환자의 생명을 건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이 환자가 이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살았을 수도 있고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 이 의사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입니다. 살아야 할 사람이라면 어떤 의사를 만났어도 살았을 것이고, 죽을 운명이었다면 명의를 만났어도 소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의사를 만났기 때문에 살았다고 100%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소중한 일을 하고서도 ‘나 때문에’라는 수식어를 과감히 버리고 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직업이나 재능은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 보면 역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역할은 절대적이지 않아서 내가 아니어도 일은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역할에 대해 논할 때 그것을 타인을 위해 자신이 꼭 필요한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내가 아니어도 세상은 돌아갑니다.

선교훈련을 다 마치고 선교지에 나가기 바로 직전에 돌이 갓 지난 셋째 아이가 선천성 백내장이라는 병을 진단받았습니다. 부랴부랴 수술을 받게 하고 일 년 동안 보지 못하여 약시가 되어버린 눈의 재활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가기로 했던 방글라데시의 지역 지도자는 우리에게 그곳에는 소아안과가 없으니 다 나은 다음에 선교지로 나오는 게 좋겠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국에 정착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고, 근무할 여러 병원을 알아보던 중에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다시 와줄 수 있겠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 일은 엄밀히 말하면 외과 전문의의 일은 아니었지만, 내게 주어진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해 나갔습니다. 동료들은 하나님이 내게 이 일을 감당케 하시려고 선교를 못 나가게 막으신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언젠가 다시 이 직장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이 일들을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면서, 떠나야 할 때임에도 못 떠나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내가 없어도 잘만 돌아갈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의 유익을 위해 이곳에 두셨다고 깨달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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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