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이러한 문제들을 갖게 된 원인을 몇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신학교의 신학교육을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될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삶 자체가 성경에 기록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교리를 따질 필요도 없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삶에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그 삶에서 교리들 뽑아내어 체계화하고 학문으로 집대성하였습니다. 수십 세기에 걸쳐 다듬어지고 확고해진 신학은 이제 명실상부한 학문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교리들이 삶에서 나왔음에도 다시 삶에 반영시키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많은 위대한 신학자들이 기독교적 가르침에 관하여 바르게 ‘생각’했지만 그들의 삶이 반드시 그들의 신념을 반영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서구의 기독교 신학교에서 이런 편향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학생들은 4년 동안 머릿속에 명제적 진리를 쌓아 올린 다음 실제 사역을 위해 지역 교회로 보냄을 받습니다.

4년 혹은 7년 동안 훈련을 받고 지역 교회에 파송을 받은 목회자들은 그간 배운 학문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수고를 해야 하고 그나마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이 밑에서 배우고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은 나름대로 독특한 신앙의 성격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들이 한국교회의 문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기는 어렵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 것을 지금은 교리만 남아서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곧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처럼 행함이라면 열매가 없다면 신앙이라는 그 나무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또 다른 나무가 생길 수 있을 텐데, 모양만 나무 모습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하시려는 구원 사역에 도리어 방해가 되는 모양새가 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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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