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교회는 플라톤의 영향 아래 영육이원론을 내세웠습니다. 즉 영혼은 거룩하고 육체는 속되고 더럽다는 개념인데 이것이 기독교에 나타난 이원론의 효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교회는 거룩하고 육체가 거하는 세상은 부정하다는 교회와 세상의 이원론적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성속이원론이 체계화되었는데 세상보다 거룩한 곳은 교회이며 교회보다 거룩한 곳은 수도원이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려고 자처해서 수도원을 향했던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사제를 세워 예배를 집전하기 시작했는데 이 영향으로 예배를 위해 구분된 사람들을 성직자라 하고 나머지 일반 대중을 평신도로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속이원론의 영향으로 성도들은 세상에 대해 그릇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5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요17:18

대부분 성도는 세상의 의미를 교회의 바깥 공간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종료하면서 목사님께서 성도들을 향해 이제 예배가 끝났으니 세상에 보낸다고 선포할 때 대부분 교인은 거룩한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이제 죄로 찌든 직장과 가정 등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보냄을 받는다고 이해할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거룩한 곳인 교회나 예배당의 바깥 공간이라는 암시를 주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언급한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사는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뿐 아니라 제자들이 사명을 부여받는 사역의 장소로서 ‘세상’을 언급하셨으며 요한은 하나님 나라와 대립한 영역, 사단에 의해 대표되는 집합적인 인격체로 묘사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에 의해 통제를 받는 체제를 가리키며 본질상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합니다. 세상의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세속주의적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면 교인들은 ‘세상’이라 부르는 곳을 향해 출발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열심히 듣고 마음에 굳센 결심을 하고 이번 한 주는 한번 잘해보겠다고 되뇝니다. 집과 직장에 돌아와 보니 교회에서 생각한 것들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며칠이 지나면 다시 주일을 기다립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좋은 설교도 듣고 마음을 재정비하고 다시 힘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생활을 한다면 일주일 중 하루만 신앙인이 되는 꼴일 것입니다. 교회도 세상에 속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좀 더 쉽게 이분법적 사고에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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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