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누가 선교사인가2020. 3. 16. 19:48

모 선교단체에서 출판된 ‘보내는 선교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가는 선교사가 있고 보내는 선교사가 있는데 보내는 선교사는 격려, 물자, 재정, 기도, 연락, 귀환 후원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성도들을 격려해 ‘무릎 선교사’를 세우는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습니다. 선교를 이렇게 다양한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자칫 잘못하면 빠질 수 있는 오류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이 개념에 의하면 우리가 선교 현장에 직접 갈 수가 없어서 대신 여러 가지 형태로 선교사를 돕는 일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선교에 동참하자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가는 선교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했으니 대단한 선교이고, 이곳에서 직장에 다니면서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며 선교를 돕는 ‘보내는 선교사’는 덜 귀한 선교사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주적인 교회의 개념을 설명할 때 교회의 지체는 비록 작을지라도 귀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간에 함께 하는 모든 일은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있습니다. 도리어 가는 선교사는 보내는 선교사와 교회의 도움으로 선교지에서 선교할 수 있으니 그들에게 큰 감사들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헌신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나가 있기 때문에 더 큰 헌신을 드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에게는 특별한 상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사람에 대해 보상심리를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각자의 고유한 역할이 있는 것이고 그 역할은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 값진 것인데 우리가 굳이 서열을 정하고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통합선교는 도리어 삶의 현장이 선교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가는 선교사는 그 땅에 이사 가서 사는 것이 선교이며, 보내는 선교사는 이곳에서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선교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세계를 품고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선교에 대한 그들의 역량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이렇게 선교사를 ‘가는’과 ‘보내는’으로 꼭 나눠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선교사 앞에 다양한 단어를 붙여 ‘○○○ 선교사’로 부르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일종의 마케팅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대중에게 선교의식을 고취한 결과로 교회와 선교단체로 더 많은 후원과 관심을 이끌어 내게 되고, 성도들에게는 선교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는 꼴이 돼버립니다. 성도가 감당해야 하는 선교는 신앙의 일부 정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삶 전부가 선교적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비전을 물어보면 대개는 선교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심지어는 선교를 교회 성장을 위해 좋은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교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몸부림치는 교회도 있지만, 성도들에게 선교를 강조함으로 그들의 관심과 더 많은 헌신을 끌어내고 그 결과로 교회의 부피가 커지는 쪽으로 방향성을 갖는다면 선교를 하였다기보다는 선교를 활용했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