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내 평생에 몇 명을 전도했다고 떠벌리는 사람보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도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마치 자신이 해낸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말한다면 이미 상을 받아 버린 것이 되어 하늘에 남겨지는 상은 없어질 것입니다.

기독교 서점에 가면 ‘OOO 전도왕’이라는 책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는 분들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전도의 열매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주권은 분명히 주님께 있는 것인데 내가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의 수를 세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성도의 기도와 사랑의 섬김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이 아름다운 협력이 필요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4:2

항상 힘써야 할 복음 전도를 수로 표현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함정에 빠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숫자에 연연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수천 명이라도 주님께 돌아오게 하실 수 있는 분인데 몇 명을 전도하고 교회를 몇 개 세우고 몇 명을 도왔다는 이런 우리의 자랑이 얼마나 가소롭겠습니까? 다 주님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하면 될 것을 하나둘 숫자를 세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10여 년간 사역하고 나오신 한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사역 동안 단 한 명의 회심자만 얻었을 뿐이라고 고백하시던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 캄보디아에서는 대부흥이 일어나서 집회 때마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주님께 돌아온다고 합니다. 숫자의 논리라면 열매 맺고 인정받고 싶은 선교사는 캄보디아로 가야 합니다. 교회는 선교사에게 왜 열매가 없느냐고 다그치면서 교인 수를 보고하라고 하므로 그 힘든 곳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10년 사역한 선교사님은 능력이 없고 심지어는 불성실한 사역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필리핀의 한 사역자에게 한국 교회에서 교회를 지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넓고 좋은 교회에 교인이 많지 않은 것을 보고 교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예배드리는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교회를 지어줬는데 왜 교인이 안차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고민하다 못해 선교비 일부를 할애해 현지인들을 그 자리에 앉혀놓고 사진을 찍어 보내기 시작했고, 나중에 이 사실이 발각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님 일을 하면서 숫자를 과감히 버린다면 더 온전한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더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입니다. 숫자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주님이 하신 일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갓 전문의를 따고 한 종합병원에 취직해서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 수년 후에 선교지에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 훈련, 말씀 묵상 뭐든 다 열심히 했었습니다. 그곳이 선교지이고 여기서 선교하지 못하면 어디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진료 현장에서 환자에게 전도도 열심히 했었는데 그 수가 많아져서 엑셀 프로그램에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전도한 날짜와 영접 여부를 기록하여 월별 통계를 내기도 했습니다. 매달 이런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이 자랑할 만한 좋은 열매들을 흐뭇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생각이 얼마나 유치하고 교만했든가 하는 맘이 듭니다. 훗날 마치 내 공으로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던 나의 모습을 회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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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