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회에서 듣는 세상에 대한 영향력은 세속적인 성공 주의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목사님들은 성도들을 향하여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록 기도하고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길 축복합니다. 믿음생활을 하면 만사가 형통하다는 공식을 입증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흔하게 들어볼 수 있는 말이 세상에 대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서라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높은 직위에 오르거나 많은 재물을 갖는 것이 복음을 전하기가 쉽다는 논리입니다.

세상에 대한 영향력은 내가 가진 재물과 권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이러한 관점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따라가기 위한 교묘한 술수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뭔가를 해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주님은 그 자리에 안 계십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다른 가치관을 갖고 세상에 맞서야만합니다. 겸손히 그분의 역사를 바라며 내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일만이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를 따르는 신앙인도 세상의 가치관과 똑같은 성공을 이루려고 애를 씁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부와 명예를 누리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과도한 교육열을 보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생의 패배자처럼 여겨지는 절실함 속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와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조차도 모른 체 발버둥을 치는 것입니다.

학교에 진학하거나 직장에 취업하는 문제도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 것 이전에, 그러한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하나님이 개입하셨는가에 관심을 둬야 합니다. 진정한 세상에 대한 영향력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몫이며 우리는 다만 순종할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 한국인의 정서에 배어있는 성공 주의가 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성공하는 길은 세상이 알아주는 권위와 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훌륭한 성공은 바로 하나님의 성공입니다. 하나님이 성공하시면 그 자녀 또한 성공의 반열에 이르게 됩니다. 성공에 대한 성경적 가치는 세상이 바라보는 그런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잘 회복되어 가는가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날씨 좋은 토요일에 인근의 교회 성도들과 교회대항 축구 경기를 했습니다. 그 경기에서 이기면 받게 되는 상품은 꽤 좋은 것이어서 다들 최선을 다해 운동장을 뛰어다녔습니다. 응원하던 성도들은 각자 자신의 교회 팀이 이기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각각 우리 편이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과연 어느 편의 기도를 들어주셨을까요? 우리 편이 이기게 해달라고 한 기도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하나님은 신앙심이 더 깊고 더 간절히 기도한 팀이 이기도록 돕지만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그 게임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맡기며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것이지 어느 팀이 이길 것인가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는 이긴 팀도 진 팀도 없으며 다만 그 과정을 통해 각 성도가 더 성숙해지는 성공을 이루길 바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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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