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센병을 앓는 병자가 손발 가락이 손상을 받는 이유는 말초 신경의 손상으로 감각이 무뎌져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겪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을 가질 만큼 큰 어려움에 부닥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유익한 것이며 도리어 나를 유익하게 하시려고 그것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넘어질 수는 있지만, 땅바닥에 엎드러지게는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거의 바닥을 친 것 같고 더는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아 막막해할 때 이 시편 말씀을 떠올려봅시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37:24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아주 큰 어려움을 당하고 계셨는데 의연하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죽어봤자 천국인데 그것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나겠어?”
많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위협을 느끼고 있었는데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렇게 절망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고난은 자신의 죄에 대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하나님의 시험으로 허락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고난이든 그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잘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질병이나 직장 내에서의 갈등, 가정불화 등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감사가 사라지고 마음은 평온함을 잃게 마련입니다. 고통 가운데 처한 성도들은 하나님께 더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특히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했어도 일이 진척이 없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자포자기하고 싶은 심정일 때 기도가 더 간절해집니다.
주님이 우리 삶의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최고의 사랑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런 과정이 얼마나 유익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보시는 주님은 그 일의 해결 과정에 개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일을 통해 우리와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겪는 어려움이 우리의 미련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길 기도해야 합니다. 이 어려움이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고 지고 가는 십자가로 표현된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미련함이 자초한 일이 아니라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주님을 따르는 길로 인식하고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 성도라 하면서 어찌 주님의 십자가가 내 삶에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의예과 2학년 여름 의대 기독 학생 수련회는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여수 애양원에서 열렸습니다. 순서 중에 그곳에서 살고 계신 환자분들이 아름다운 찬양도 해주시고 간증도 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메시지는 ‘고통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한센병을 앓는 환자들은 난로에 손을 대도 뜨거운 줄을 모릅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더 큰 믿음의 분량을 자라가며 아버지께 기쁜 자녀가 되어갈 것입니다.
'3 구속(Redemp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3.4. 하고 있는 일의 의미 (0) | 2020.03.17 |
---|---|
3.5.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0) | 2020.03.17 |
3.7. 문설주에 피 바르기 (0) | 2020.03.17 |
3.8. 나는 평안하다? (0) | 2020.03.17 |
3.9. 성숙의 길, 십자가의 길 (0) | 202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