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안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단어는 ‘야다’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총 944군데에 쓰였는데 그 뜻이 다양합니다. 그것들은 인지하다, 경험하다, 구별하다, 배워서 알다, 어떤 사람을 알다, 관계하다, 성적 관계를 갖다, 다른 사람과 인격적이며 친숙한 관계를 맺다 등입니다. 창세기 4장 1절에서 아담이 하와와 동침하였다는 단어가 ‘야다’라는 것을 알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히브리인들이 누구를 안다고 표현하는 말은 이성과 논리로 안다는 것이 아닙니다. 삶과 경험을 통해 마치 부부가 동침하듯이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것을 안다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친숙한 관계를 맺는 것,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됨을 이해하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안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머리로 이해하려 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해하다(understand)’라는 단어가 아니라 ‘알다(know)’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많은 사람이 고대 그리스 사람들처럼 지식과 형이상학적 본질을 따지면서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 관계가 형성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도 그분의 존재와 하시는 일을 인정해드리고 태초에 형성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해질 것입니다.
대학 1학년 때 캠퍼스에서 우연히 알게 된 형과 몇 개월 동안 창세기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교회만 다녔지 신앙의 깊이가 거의 없었던 때였는데, 공부할수록 더 많은 궁금증이 쌓여갔습니다. 만날 때마다 꼬치꼬치 캐묻는 나의 질문에 다 대답하기는 늘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때 그 형이 나에게 알려준 말이 인상 깊었는데 ‘하나님을 이해(understand)하려 하지 말고 알아(know)가라’고 한 말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0.999999…… 는 1과 같다고 하시길레 ‘그건 분명 1에서 조금 모자란데 어떻게 1입니까?’라고 따져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극한이니 무한이니 이런 개념을 모르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교무실로 나를 부른 선생님은 나중에 알게 될 테니 지금은 그렇게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마치 부부가 동침하는 것과 같은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비록 이해하지 못한다고 부정하기보다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자세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알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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