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훗날 믿음의 아버지가 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바라크)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베라카 )이 될지라. 창12:2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이 복(베라카)은 아브라함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까지도 포함하여 그의 민족과 후손까지 이어지는 공동체를 위한 복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세계나 인류 사회를 위한 복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거하던 소돔이 멸망할 때도 그 성읍 내에 의인 열 명이 있었다면 그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유황과 불로 말미암아 수만 명의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그 성읍에 있어야 할 단 10명의 의인의 존재는 그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아주 중요한 잣대였습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수산성에 거하였던 왕후 에스더도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땅에 거하던 모든 유대인을 살리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여기 제시한 예들 이외에도 성경에는 개인이 그 공동체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있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내가 속해있는 다양한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개인이 중요합니다. 공동체에 깃들여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잘 알고 서로 힘을 합쳐 일을 이뤄나가기 이전에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개인이 먼저 주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회복은 곧 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공동체의 회복은 그들 가운데 혜성같이 나타나서 무리를 이끌어줄 강력한 지도자가 이뤄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지도자의 능력부족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공동체가 올바로 세워지고 아름답게 다듬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각 개인의 관계회복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회복되었는데 살펴보니 전체가 회복되었다는 고백을 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기독교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다른 일반 병원보다 상처가 더 큽니다. 껍질은 기독교 병원이고 알맹이가 다른 병원과 비슷할수록 상처가 더 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병원을 하겠다는데 병원 사정을 알아갈수록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기독교라는 상표를 붙였으니 어쩔 수 없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 해 동안 병원선교회 회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첫 모임 시간에 회원들과 나눈 말씀이 ‘개인의 회복을 통한 공동체의 회복’이었습니다. 전체가 바뀌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바뀌어야 하며, 주님이 소돔에서 찾았던 의인 열 명이 되어보자고 했습니다. 기독교 병원은 최고경영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병원이라고 이름을 붙인 곳에 안 계실 리가 없습니다. 병원의 주인이 주님이시면 흥망성쇠도 관장하실 테니, 우리는 다만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하면 됩니다. 각 처소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 역할을 다하면 누가 보아도 기독교 병원이 되는 것이고, 내가 직장을 비난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으면 무늬만 기독교 병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직장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해있는 그리고 앞으로 속할 모든 공동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나 한사람이 그 공동체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삶에 더 신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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